한 어부가 바닷가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다가 우연히 '램프'를 건진다('구리 항아리'라고도 하고 '호리병'이라고도 한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그가 어렵사리 뚜껑을 열자 홀연히 거인이 나타나 어부를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한다. 생명의 은인에게 이럴 수가. 거인의 이름은 지니였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솔로몬을 거역했어. 납으로 봉인을 해서 나올 수가 없었지. 처음 100년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기다렸어. 누가 나를 구해주면 평생 부자로 만들어 줘야지. 그러나 아무도 나를 구해 주지 않았어. 그래서 그 다음 100년 동안 이렇게 생각했지. 누가 나를 구해 주면 숨겨진 보물을 모두 알려 줘야지. 그래도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어. 그렇게 400년이 흘러갔지 그래서 나는 생각했어. 누가 나를 구해 주면 세 가지 소원을 들어 줘야지. 그래도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더군.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맹세했지. 누가 나를 구해주면 그놈을 죽여야지. 그러니 어서 네가 죽을 방법을 말해…"(엄혜숙 '어부와 지니'(2001) 한솔교육)
<�어부와 지니>는 액자식 구성으로 유명하다. 즉 본 이야기(샤르야르 왕과 샤라자드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어부와 지니 이야기)가 있고 그 속에 또 이야기(유난 왕과 현자 두반 이야기)가 들어 있는 방식이다. 어떻든 간절함이 지나쳐 원망이 되고 이것이 가학성 심리로 변하는 과정을 이 이야기는 알려준다.
<�옛이야기의 매력> 저자 부르노 베텔하임은 이를 '고통이 길수록 더 원망하는 어린이의 심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지금 북한의 처사를 설명해 주는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어부에 해당하는 한국이 지니의 숙원인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 주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변죽만 울렸을 뿐 뚜껑을 열어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맥락과 구도상 이 이야기가 연상되었을 따름이다.
동화 속에서 어부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한다. '당신과 같은 거인이 이렇게 작은 항아리에 들어 있었던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해 거인을 다시 항아리에 가두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다른 버전에서는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거인의 애원을 듣고 그를 풀어주었고, 이로써 지니는 어부에게 충성하게 된다는 얘기도 있다.
목하 폭연(爆煙)이 자욱한 개성의 하늘을 바라본다. 이제 지니를 위하여 항아리의 뚜껑을 열 것인가. 아니면 거인을 못 나오게 가둘 것인가. 동화 속 어부는 스스로 이를 선택했는데 현실의 어부에게 어느 쪽이든 선택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것인가. 이 판의 결정권은 어부에게 있는가 지니에게 있는가, 아니면 샤라자드나 샤르야르 왕에게 있는가.

정길화 아주대 겸임교수·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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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8, 2020 at 08:5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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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한이라는 램프 속 '지니', 뚜껑을 다시 닫아야하나 - UPI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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